| [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 학부모 분투기 [2007-11-22]
한국학생 없는 학교 찾아 헤매다
일반학교 국제부선 중국어 향상 불가능… 학비도 캐나다 못지않게 들어
베이징에 있는 한국국제학교. 베이징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인 자녀들만 다닐 수 있다. 중국 현지 취재 도중에 만난 사업가 ㅂ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국에 유학 보낸 부모들이 얼마나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중국 유학의 실상에 실망하면서도 국내로 U턴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ㅂ씨의 자녀는 중국 다롄에 유학을 갔다 베이징으로 옮겼다. 중국어를 배우러 유학을 갔는데 정작 수업을 영어로 했기 때문이다. 중국어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어수업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ㅂ씨는 베이징으로 전학하기로 결정했다. 영어와 중국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중국에 유학 온 당초 목적대로 먼저 중국어를 잡는 것이 순서였다.
그런데 베이징에 있는 학교를 물색하던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국 학생들이 다니는 일반 중학교(우리나라 중·고등과정)에 국제부가 개설돼 있는데 대부분 국제부마다 한국 학생들끼리 공부한다는 것이다.
“한국 귀국도 쉽지 않아 진퇴양난”
“베이징에 있는 학교마다 한국 학생들로 만원이었습니다. 국제부가 있는 일반 학교에서는 정작 중국 학생들과 공부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어요. 물론 중국어가 수준급이면 중국 학생들이 있는 반에서 함께 공부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중국 학생들과 경쟁이 되지 않아 탈락해 다시 한국 학생들끼리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중국어가 안 되니까 심지어 한국인 교사들이 한국어로 수업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정말 아찔했습니다. 중국 유학을 잘못 온 게 아닌가 후회가 생겼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나 할까요. 중국 유학을 온 마당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아 저처럼 진퇴양난에 처한 학부모가 많을 겁니다.”
ㅂ씨는 이때부터 사업을 그만두다시피 하고 베이징에 머물면서 아들이 다닐 만한 학교를 찾아 헤맸다. 그는 국제부가 있는 일반학교는 선택기준에서 배제했다. 그런 학교에서는 결코 아들의 중국어 실력이 늘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아 수소문을 거듭한 끝에 한국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를 찾았다. 그는 아들을 그 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ㅂ씨는 이런 경우도 아들이 고3이 되면 중국 학생과 한 반에서 공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다행히 고3인 아들 녀석이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돼 목표로 하는 칭화대에는 특례입학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중국 유학의 현실이 너무 달라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최근에도 HSK 시험을 보는데 듣기평가를 하다 테이프가 작동하지 않아 시험을 중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교육 선진국이라면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요. 이게 바로 중국의 교육 현실입니다.”
ㅂ씨처럼 일부 학부모들은 중국의 유학 현실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허탈감과 함께 점차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을 느낀다. 중국 현지 교육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중국은 외국인 유학생에 대해 개방적이고 특례입학을 허용하고 있지만 정작 유학생들이 중국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극히 인색하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지적하는 것은 중국 학생이 없는 국제부의 교실 분위기다. 대부분 한국 유학생은 중국에서 한국 학생들끼리 공부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중국에 유학을 가더라도 교실에는 정작 중국인 학생들이 없는 셈이다. 중국인들을 친구로 사귈 수 없고 함께 공부할 수 없는 유학생활이라면 말 그대로 안 가느니만 못 하다. 외국에 유학을 갈 경우 현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게 일반적이고 ‘당연한 권리’인데도 중국에서는 이 권리마저 인정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중국에서 외국 유학생들이 중국 학생과 함께 공부하기란 산 넘어 산이다.
중국어·영어 2개국어 정복 어려워
베이징 순이(順裏) 국제학교(ISB) 정문 모습. 한국에 부모가 살고 있는 경우 조기 유학생은 원칙적으로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 그래서 ㅂ씨와 같이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게 국제부가 없는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다. 중국에 한국의 조기 유학생들이 넘쳐나다 보니 일부 한국 학부모들은 아예 한국 학생들이 거의 없는 학교를 찾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부가 없는 중학교도 외국인 학생들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중국 당국에서 외국학생을 받을 수 있도록 허가받은 학교인지 알아봐야 한다. 모든 학교가 외국인 학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학교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학부모가 직접 그러한 학교를 찾아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그게 중국의 교육 현실이다. 한국 학생이 이 학교에서 유학할 경우 고2까지는 중국 학생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
다만 스칭중학과 베이징중자학교(CCSC) 등 일부 학교의 경우 중국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 이들 학교에도 한국 학생이 많다. 이들 학교는 영어와 중국어로 나눠 수업을 한다. 문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느냐다. 대부분 한국 학생은 중국어 실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 실력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영어 하나도 제대로 공부하기 힘든 상황에서 중국어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더 바랄 게 없지만 중국어와 영어를 모두 정복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또 학비도 캐나다 등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만만찮다. 이에 대해 ㅂ씨는 “극소수 학생은 영어와 중국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이 슈퍼맨도 아닌 이상 영어와 중국어 수업을 모두 따라갈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 대학의 휴학제도도 외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유학생에 대한 중국 당국의 지원책이 얼마나 무성의한지 보여준다. 중국 교육당국은 대학생의 휴학을 1년밖에 허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 대학에 특례입학한 한국 학생들은 군복무를 하려고 해도 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할 수 없다. 불가피하게 재학 중에 군대에 가려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다. 군복무가 의무인 한국 유학생들은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유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먼저 군복무를 하고 중국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다. 김호중씨(23)는 베이징의 26중학을 졸업한 후 먼저 군복무를 마치고 베이징외국어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불합리한 휴학제도도 대학 진학을 연기한 이유였다고 한다.
중국대학 ‘특례입학’ 제구실 못해
한국은 자녀교육에서도 일본의 시행착오를 여지없이 반복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1970, 80년대에 조기유학 붐이 일었다. 일본은 20년 전 무분별한 조기유학이 붐을 이뤘다가 지금 우리나라와 같은 문제점이 드러나자 조기유학 붐이 잠잠해졌다. 일본에는 이제 조기유학 붐이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의 시행착오를 20년이 지난 지금 새삼 겪으며 몸살을 앓고 있다.“중국 학교에서 한국의 조기 유학생들은 중국 학생들과 공부할 수 없다. 또 대학에서는 중국어 실력이 떨어져도 특례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중국 명문대학을 나와도 특례입학의 ‘굴레’로 취직할 수 있는 대기업이 없다.”
이것이 중국 유학의 현실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 유학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후에 대학원을 진학할 때 고려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잘라 말한다. 대학원은 외국인 학생과 중국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 학생들도 대학원에 유학온 학생들은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으로 인정하고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중국인의 장삿속이 순수해야 할 학생들의 ‘우정’에까지 뻗쳐 있는 것이다. 중국에 유학간 한국 학생들이 만리장성을 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중국과 한국이 유학생의 인적 교류를 통해 서로 ‘윈윈’하기 위해서는 유학생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중국과 한국 당국의 제도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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