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5) 중국 베이징 세청중학 [2007-10-18]
 중국어·영어 2개 국어 정복 가능
중문부와 영문부 구분 학제 운영… 외국계 국제학교보다는 수준 떨어져
중국에는 명문 보딩스쿨이라고 할 만한 국제학교가 없다. 외국계 국제학교는 베이징 등 중국에 부모가 살고 있어야 입학할 수 있다. 물론 외국계 국제학교는 편법을 동원하면 입학할 수 있지만 기숙사 시설이 없어 따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명문 국제학교의 경우 연간 등록금이 2만 달러 이상이고 여기에 숙식비까지 고려하면 최소 3만 달러 정도 들어간다. 이 정도의 등록금이면 굳이 베이징에 있는 국제학교에 갈 까닭이 없다.
베이징 조양구에 있는 세청중학(WYA: Beijing World Youth Academy)은 한국 학생이 많은 곳 중 하나다. 이 학교는 중국인이 설립한 사립형 국제학교다. 기숙사시스템(보딩스쿨)을 갖춘 국제학교가 없는 중국의 현실에서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학교로 꼽힌다. 중학과정과 고등과정에 각각 중문부와 영문부를 운영하고 있다. 400명 정원에 한국 학생은 100명이 넘는다. 개인적으로 오는 학생은 왕징에 있는 한국 학생 전용 기숙사를 이용해야 한다.
한국인 재학생 100명 넘어
WYA은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가 심사를 거쳐 지정한 국제IB회원 학교다. IB는 세계적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국제 학위로 대부분 국제학교에서 운영한다. 유럽이나 호주, 영국 그리고 캐나다의 일부 대학은 IB점수를 기준으로 학생을 선별한다. 이러한 지역의 대학에 유학하고자 할 경우 고교(11~12년) 때 IB과정을 이수해야 한다.WYA은 베이징 왕징지구의 대사관구안에 있어 환경이 좋고 교통이 편리하며 55중학교의 국제부에서 분리돼 국제학교로 시작했다. 이러한 점에서 WYA은 베이징에서 드물게 40여개 국의 외국인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한국인 학생들은 각자 목표에 따라 중국어로 하는 중문부와 영어로 하는 영문부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중문부에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많다. 영문부에는 주재원 자녀들이 주로 다닌다. 주재원 자녀들의 경우 중국어가 능통해 굳이 중국어로 수업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중문부는 중국 대학, 영문부는 외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주로 공부한다.
중국어에 서툰 학생들을 위한 한어진수반도 운영한다. 한국 학생이 유학하면 초기에 대부분 이 과정을 거친다. 중국어로 강의하는 학력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중국어, 물리, 수학 과목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한어진수반은 예과, 학력반은 본과인 셈이다. 대부분 유학생이 6개월 이상 한어진수반에 다니는 실정이다. 다른 로컬 국제부의 경우 한국 유학생은 대부분 예과에서 한국 학생들끼리 공부한다.
WYA은 중문부와 영문부로 구분해 학제를 운영해 노력만 한다면 영어와 중국어, ‘쌍어(雙語)’ 정복이 가능하다. 물론 외국계가 운영하는 국제학교도 중국어와 함께 영어수업을 하고 있지만 로컬학교의 국제부에서는 대부분 중국어로 수업을 한다. 더욱이 로컬 국제부는 한국 유학생들이 중국어조차 제대로 못해 ‘한국식’ 수업을 하는 곳도 있다. 이 경우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졸업 후에 베이징대 등 중국의 대학에 특례입학하기 위해 유학을 하는 것이다. 학비는 중문부와 영문부가 2배 정도 차이가 난다. 중문부는 연간 6000달러, 영문부는 1만2000달러 선이다.
한국 유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어가 너무 어렵다고 토로한다. 중문부 학생회장인 유한빈군(고2)은 “리포트를 내야 할 때 중국어가 달려 보고서 작성이 힘들다”고 말한다. 같은 학년인 황재성군은 중2 때 유학을 왔지만 한 학기만에 적응했다고 한다. 황군은 베이징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다.
원종화군은 부모님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라고 했지만 중국을 택했다. 그는 “미국 유학 중인 친구를 보면 한국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서 미국 유학 중인 친구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을 보고 미국 유학을 접었다고 한다. 미국에 유학 갔다가 중국에 온 학생도 있다. 이효선양은 고1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1년 동안 공부했다. 중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있고 개방화하면서 세계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어 중국 유학을 택했다고 한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졸업 후 “선교의 목적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하기도 했다.
“한국 학생들 열심히 공부하는 편”
중문부의 진가양(陳家讓) 교장은 수학교사로 44년 동안 교단에 섰던 베테랑 교사 출신이다. 그는 “한국 학생들은 목표가 뚜렷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라면서 “졸업생 중에는 많은 학생이 베이징대나 칭화대에 들어가고 좋은 성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는 “다만 한국의 유학생들은 베이징에 있는 대학만 명문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지방에 있는 명문 대학으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진 교장은 WYA의 자랑으로 교사끼리 서로 강의를 평가하는 제도를 꼽는다. 매달 교사가 서로 강의를 평가할 뿐 아니라 학생들도 교사의 강의를 평가한다. 또 교사들은 논문을 써 5년마다 공개수업을 해야 한다. 논문평가를 통해 초급에서 특급까지 점수를 매긴다.
WYA는 다른 로컬 중학과 달리 영문부를 운영하는 등 국제학교의 체계를 갖춘 편이지만 미국계 등이 운영하는 국제학교에 비해서는 규모나 시설, 운영체계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물론 한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영국이나 인도 등의 보딩스쿨과는 천양지차다. 캠퍼스 규모도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학교 교사(校舍)라고 해봐야 중등부와 고등부 두 군데 있고 건물도 한두 동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보딩스쿨을 연상한다면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정도다.
현지 교육전문가들은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특히 중국 조기유학은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어라도 배워두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자녀를 중국에 유학 보낸다면 재고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CEO들 사이에 자녀들을 중국에 유학 보내거나 중국어를 배우게 하는 붐이 일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미국의 경우 영어라는 ‘태생적 무기’가 있고 여기에 자녀들이 중국어를 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인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어라기보다 영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어를 잘 하고 영어를 못 한다면 ‘헛투자’하는 꼴이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결국 영어를 쓰는 외국인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중국 취재를 마치면서 중국 유학전문가는 기자에게 “중국에 유학을 보내지 말라는 기사를 써달라”고 당부했다. 베이징에 살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정부나 학교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교육장사’를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기자가 보기에도 중국의 교육 인프라는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열악했다. 그게 중국의 현실인데, 한국의 학부모들은 이러한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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