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저 없이 윈난성을 권한다 [2005-06-28]
 많이 지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할 때, 첫 대학원 답사지가 중국 윈난성이라는 얘기를 듣고 무척 당황스러웠다. ‘왜 하필이면 지저분하고 정신없다고 하는 중국 지방 여행일까. 아직 베이징도 못 가봤는데….’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워낙 발전한 도시라니 한번쯤 가 보고 싶었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중국 지방으로 떠난다는 것은 너무 낯설기만 했다.하지만 이제는 ‘어디로 여행을 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윈난성을 권한다. 특히 일상에 지치고, 도시에 지치고, 미래를 향해 뛰어가야 하는 현실에 지친 사람에게는 말이다.윈난성은 과거였다. 오래되어 가까이하기 싫은 과거가 아닌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는 과거. 한없이 깨끗한 작은 시내, 수백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기와집들. 그리고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수민족. 한없이 과거로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곳이 바로 리장고성이다. 다리(大理)는 리장(麗江)보다 작기는 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다리(大理)의 아침 풍경리장과 다리에는 과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리장고성의 전통가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에서는 기분 좋은 음악이 흐르고, 윈난 커피와 와인의 향기, 즐거운 여행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다리의 어느 골목에는 한류 스타들의 광고판이 걸려 있다. 리장과 다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했다. 비록 미래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내 마음은 더욱 편안했다. 그저 내가 그곳에 있음을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미래를 느끼고 꿈꾸는 것은 윈난이 아닌 나의 몫이었다. 흔히 ‘올드 타운’이라 불리는 리장고성에 가거든 일단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돌아봐야 한다. 어디를 가겠다든가, 무엇을 하겠다든가 하는 마음 없이 말이다. 이곳 저곳 상점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걸어보기도 했다.
◇리장 곳곳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고성 구역의 규모는 그리 큰 것이 아니어서 반나절만 투자하면 구석구석 자세히 볼 수 있다. 골목마다 한없이 펼쳐진 오래된 집들은 묘한 매력으로 이방인을 이끈다. 새로 지은 건물도 아니고, 수백년이 지난 곳이라니 얼마나 놀라운지!낯선 노랫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모여 드는 곳을 보니 쓰팡가(四方街)라 불리는 중앙광장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소수민족들이 공연하고 있었다. 2월이어서 그런지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아 어느 순간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다. 짧은 공연을 지나쳐 주변의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현재 사용되는 유일한 상형문자인 둥파(東巴:나시족)가 적힌 액자와 리장고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흑백으로 담은 사진엽서를 골랐다. 리장과 다리는 물론이고, 윈난성의 관광지 어디에서든 소수민족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소수민족의 옷을 직접 입어 볼 수도 있다. 옷을 빌리고 사진을 찍는 데 5위안(약 750원)이면 가능하다. 식사시간이 되자 시냇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식당들 중 우리보다 앞서 이곳을 여행한 경험이 있는 선배의 추천으로 들어간 ‘마마 푸(Mamafu)의 피자는 수준급이었다. 피자 맛보다도 맑은 시내를 따라 놓여져 있는 야외 테이블의 분위기가 그만이었다. 수백년이 된 식당건물은 날이 어두워질수록 빛났다. 그것은 유럽의 노천 카페와는 또 다른 고즈넉한 낭만이었다.
◇소수민족들의 공연이 끊이지 않는 중앙광장 ‘쓰팡가’. 다리고성은 해가 어슴푸레하게 질 무렵 걸어보는 것이 좋다. 해가 쨍쨍 내리쬘 때의 다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저기 작은 노점상들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과일들을 사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리에는 리장보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곳곳에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있다. 특히 티베트 출신 주인이 운영하는 티베트 카페에서 마신 ‘해피 아워’라는 맥주는 잊지 못할 것이다. 일행 중에는 규모가 큰 리장보다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다리가 더 좋다는 사람도 있었다. 별빛이 흐르는 카페를 그린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라는 그림을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리장고성의 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밤의 리장고성은 불빛과 커피, 와인, 그리고 웃음과 노랫소리다. 맑은 시내를 따라 색색의 불들이 켜지고, 오래된 가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들도 저마다 붉은 등을 켜면 리장의 밤은 깊어 가고 진한 커피 향과 와인 향 속으로 굳이 찾지 않아도 바로 그 순간이 ‘낭만’이다. 리장고성의 카페에서 같이 여행을 간 선배들과 어울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글로리아 게이너의 ‘아이 윌 서바이브’가 나오자 옆 자리의 이스라엘 여대생들이 신나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곱명 남짓 되는 여학생들은 서로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일어나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리장고성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 겸 식당도 있어 윈난성의 독특한 향 때문에 고생하는 여행객들에게 반가운 장소다. 윈난 커피와 와인은 부드러운 맛이 일품으로 꼭 한번 마셔보기를 권한다. 카페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으니 여유를 갖고 돌아본 후 맘에 드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쓰팡가 한쪽에는 수백년 전의 리장고성 입구가 있는데, 밤이 되면 그 앞에서 촛불을 색종이에 담에 띄워 보낸다. 파리 센강 여행의 백미는 직접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만끽하며 유유히 흐르는 센강을 즐기는 것이라면, 리장에서는 촛불에 내 마음을 담아 작은 시내에 띄우고는 여유롭게 거닐며 야경을 눈에 담는 것이 여행의 기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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