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릉도원에서의 절망 [2005-09-28]
 중국 후난성(湖南省) 장자제(長家界)에 갔다. 국내에 소개된 지 불과 5년 만에 중국 최고 관광지로 떠오른 곳. 웬만한 절경으론 이 정도로 빨리 유명해지기 어렵다. 장자제엔 ‘특별한 무엇’이 있을 법 하다. 관광이나 사업 등을 통틀어 베이징을 찾는 한국인이 1년에 30만~40만명에 불과한데 드넓은 중국 대륙의 변방인 장자제에는 지난해에만 30여만명의 한국 관광객이 찾았다지 않은가. 장자제는 근래 보기 드문 ‘히트상품’이다. 관광안내 책자에는 장자제의 특징을 딱 8가지 한자로 요약해 놓았다. 넓고(野) 높으며(峻) 험(險)하다. 기이(奇)하고, 수려(秀)하며, 아름답고(巧), 묘(妙)한 것이 딴세상(幽)이다. 처음엔 산을 표현하는 좋은 글자는 다 모아놓았다 싶었다. 허풍 심한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이려니 하며 웃어넘겼다. 막상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고 보니 기자의 선입견이 틀렸다. 너무나 독특하고, 기이해서 말문이 턱 막혔다. ‘장관’(壯觀)이란 말 한마디로는 부족하다. 외려 평생을 공부해도 다 알지 못한다는 그 많고 많은 한자(漢字)중 왜 여덟 글자밖에 못 찾았을까 아쉬울 뿐이다. 아마도 장자제는 세상에 딱 하나뿐인 산일 것이다. 산은 산이로되 산 같지 않다. 능선은 없고 봉우리만 남았다. 이런 봉우리가 무려 3,000여개. 그저 신기할 뿐이다. 3억8천만년에 걸친 융기, 풍화, 침식작용으로 지금의 모습이 됐다. 무른 흙더미는 비바람에 쓸려나가고 바윗덩어리만 남아 봉우리가 됐다. 억겁의 세월이 봉우리를 하나하나 깎아 세운 셈이다. 암봉은 장기알을 쌓아올린 것 같이 위태롭고, 피뢰침처럼 수직으로 꽂혀 있다. 윗부분이 넓고 산 아래 부분이 가늘어 쓰러질 것 같은 봉우리도 있다. 어떤 봉우리엔 구멍이 났고, 어떤 봉우리는 사람이나 거북모양으로 생겼다. 키 작은 청솔이 자라는 봉우리도 있다. 특별히 최고봉은 따로 없다. 아니 찾을 필요도 없다. 해발은 1,200ｍ 정도. 암봉은 대부분 수직으로 400ｍ 안팎이다. 장자제는 장소와 기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운무낀 산정에선 구름위에 뜬 기분이고, 거대한 암벽이 박힌 계곡은 전설 속의 주인공들이 말을 타고 달려나올 것 같이 신비스럽다. 호수 위 물그림자에 흔들리는 봉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 것 같다. 1952년에야 중앙정부의 통치력이 미쳤다는 장자제는 88년 ‘무릉원(武陵園)풍경 명승지’로 지정됐다. 비록 도연명이 ‘도원경’을 그리며 무릉도원을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했지만 적어도 장자제에는 무릉이란 말이 참 잘 어울린다. 만찬석상에서 10여년 동안 장자제시 관광국장을 지낸 티엔 구이 쥔 장자제시 비서장에게 물었다. 장자제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냐고? 그는 장자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명함에 비서장이란 직함보다 ‘장자제 사람’(張家界人)이란 글씨를 더 크게 박아놓았다. “장자제를 알리기 위해 많은 상금을 걸고 표어를 공모했습니다. 수없이 좋은 말들이 나왔지만 나중에 깨달았죠. 장자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장자제는 좋다’. 그는 딱 이 한마디로 장자제를 표현했다. 그의 말이 옳다. 아마 어느 시인이나 문장가가 온다 하더라도 장자제의 모습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여 알량하고 짧은 문자를 조합하느니 그동안 장자제에 바쳐진 선배 여행가들의 헌사를 몇 개 붙이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장자제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황산, 주자이거우(九寨溝)와 함께 죽기 전에 꼭 가야할 여행지’ ‘대자연의 미궁’ ‘중국 산수화의 원산지’ ‘걸음 따라 경치가 달라지고, 가는 데 마다 새로운 경관이 생기어 아름다운 풍광을 헤아릴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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