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도 스왑계약을 체결 [2005-05-28]
한국과 일본의 중앙은행이 처음으로 자국 통화인 원화와 엔화간 스왑 계약을 체결하는 등 환율 공조의 첫발을 디뎠다. 한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도 스왑계약을 체결해 미래 있을지도 모를 위기에 공동대처키로 했다.
27일 한국과 일본 중앙은행이 맺은 자국통화표시 스왑계약은 처음 있는 일로 양국에서 단기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는 등 금융시장이 혼란할 경우 서로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기존에 달러-원 통화스왑이 있었지만 이는 외환위기가 막바지에 몰렸을 때, 그것도 대부분을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에 따라 써야 할 정도로 용도가 제한적이었다. 또 한국은행은 중국인민은행과도 원-위안화 스왑규모를 40억달러로 두배 확대한 데 이어 앞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 3국과도 추가로 각각 10억달러씩 스왑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라 아시아 역내 국가간 정책 공조가 더욱 긴밀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IMF 영향권에서 벗어나다
한은과 일본은행이 맺은 30억달러 규모의 원화-엔화 통화스왑은 IMF의 간섭을 받지 않고 양국만 합의하면 평상시에도 쓸 수 있다. 지난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외환 부족사태 발생시 국제수지 균형과 단기 외화유동성 자금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달러-원 통화스왑 계약과 다르다. 달러-원 스왑의 경우 스왑규모의 대부분은 IMF가 특정국가에 대해 외환위기에 빠졌다고 판단해 자금을 지원할 경우에만 쓸 수 있고 양국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액수는 극히 일부다.
한•중 중앙은행도 통화스왑 규모를 20억달러에서 40억달러로 두배 확대하며 IMF 프로그램과 연계하지 않고 자율 지원할 수 있는 비율도 스왑 규모의 10%에서 20%로 상향조정됐다.기존 달러-원 스왑의 경우 스왑계약 규모 가운데 10%만 자율적으로 지원 가능했고, 나머지는 IMF의 승인을 받아야 해 IMF를 지원하고 있는 미국의 영향권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한중일 중앙은행 총재들도 아시아 국가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야할 때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박승 한은 총재는 "어려운 시기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며 "이제 한•중•일 3국중 어느 한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서로 돕기로 약속했다"고 선언했다.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화살 셋을 한데 묶으면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는 일본 속담을 인용해 원-엔 스왑의 의미를 강조했고, 저우 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 역시 "(한중 통화스왑이) 아시아 역내 금융안정을 위해 역내의 독자적이고 유연한 조치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율 협력 강화..미•유럽 압력에 공동 대응
한중일간 스왑 확대는 3국 통화가치의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평가절상 압력을 받는 중국 위안화가 우리나라와 일본 등으로 분산될 경우 자연스럽게 위안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는 것. 이와함께 3국이 통화 교환 등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의 통화 절상압력에 공동 대응할 수도 있다. 실제 한은은 현재 재정거래 형태인 엔/원 환율 시장이 달러/원 처럼 직거래 시장으로 확대될 경우 스왑 계약을 외환시장 안정 조치로 활용할 방침이다.
한은은 "엔/원 외환시장이 현재 폐쇄돼 있으나, 앞으로 다시 열어야 될 필요성 늘고 있다"며 "이 경우 원-엔 스왑이 엔/원 환율의 스무딩 오퍼레이션 차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엔 통화스왑은 일시적인 엔화나 원화 유동성 부족사태가 발생할 경우 양국 중앙은행이 단기자금을 서로 지원해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향후 원-엔 환율 시장이 발달할 경우 외환시장 안정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스왑 계약 체결이 환율 공조와 결제 체계 개편을 위한 중요한 첫 발을 내딛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은 "한중일 교역이 확대되고 있고 경제활동이 상호 연결돼 있어 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환율이나 지불 체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우선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자금이 마련돼 말로만 해오던 통화 협력의 중요한 첫 발을 내디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AMF 설립 초석..역내 통화 결제 확대 주목
한중일 3국의 통화스왑 체결은 앞으로 아세안 국가들로 확대될 예정이어서 이를 계기로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이 본격 논의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AMF 설립은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에 빠진 지난 97년 일본에 의해 제기됐으나, 아시아내 영향력 축소를 우려한 미국의 반대와 역내 국가들간 이견 조율 실패 등으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3년여간 약달러 정책을 펴온 미국이나 유로권의 협공에 아시아 국가들이 무방비로 당하고 있어 AMF 설립 가능성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우리나라가 AMF 설립 논의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특사로 스위스 다보스를 방문한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은 외환위기 경험과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근거로 AMF 설립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중일과 대만 등 동북아 4국의 외환보유액은 1조9000억달러로 미국의 24배, 독일의 20배에 달한다. AMF를 설립해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을 종잣돈으로 해 역내 경제 활성화에 투입할 경우 역내 교역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시아 통화간 스왑 확대는 역내 교역 때 달러가 아닌 아시아 통화간 결제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가 태국에서 물건을 수입하고 자금을 지급할 때 원화를 달러로 바꿔 지급한 뒤 태국 현지에서 다시 바트화로 바꿀 필요가 없이 바로 국내 은행에서 바트로 환전해 송금할 수 있게 되는 것. 이 경우 미국에 지급하는 결제 처리 절차 간소화는 물론 미국에 지급하는 수수료도 줄일 수 있다.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이번 통화스왑계약 체결은) 아시아 역내에서 역내통화 표시의 자본흐름을 더욱 촉진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상당히 장기적인 과제이기는 하나, AMF설립은 유로존과 같은 아시아 공동통화 체제 구축과도 연결지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윤 연구위원은 "단일 통화는 각국이 주권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걸려있어 당장은 어려울 것이나, 청사진은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스왑 확대를 거쳐 환율 협력이 이뤄질 경우 유로권과 같이 장기적인 통화 통합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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