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프트 차이나'를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 [2008-05-05]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영화 《패왕별희》를 찍은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은 베이징(北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베이징 사람은 기침소리에조차 가락이 있고 눈물이 나올 지경"이라며 베이징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토로하고는 했다. 그는 "그 영화를 찍을 때 나도 모르는 어떤 힘에 조종당하는 듯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그 '힘'을 '콧대 높고 거만한 베이징 사람들'의 이미지와 연결한다. 베이징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국의 중심에서 역사를 체험해 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징 사람들은 다른 어떤 지역 사람들보다 정치 이야기를 즐긴다. 술 한 잔, 차 한 잔을 두고서도 몇 시간 동안 끊임없이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베이징 사람들인데, 그 때도 단골메뉴는 역시 정치다."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인 저자는 1992년 한중수교 직후 베이징사범대에서 공부했던 '중국 유학 1세대'다. 그는 중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목격하고 연구한 생생한 중국 문화의 '속살'을 16편의 중국 현대영화에 대한 비평과 함께 이 책에서 내놓는다. 《황비홍》《색,계》처럼 잘 알려진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관진펑(關錦鵬)의 《완령옥》이나 장원(姜文)의 《귀신이 온다》 같은 마니아 취향의 영화도 있다.
이 책에서 드러난 중국은 정치나 경제, 보이스피싱이나 오성홍기 물결과 같은 '하드 차이나'에 가려졌던 '소프트 차이나'다. 어디 가도 사람이 쓰러지거나 싸움이 일어나면 금세 벌떼처럼 군중이 몰려들지만 도와주려 하지 않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공자와 루쉰(魯迅)을 인용하며 "권력자들에게 당해 온 역사적 경험이 쌓여 '구경꾼 심리'가 국민성이 됐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런 국민성은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상하이는 개방적이고 너그러운 문화를 지녔고, 홍콩은 언젠가 떠나야 할 유통기한을 의식하는 '떠돌이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천하의 통일을 위해서 모든 것이 유예돼야 한다는 《영웅》의 메시지에서는 새로운 패권 출현의 위험성을 진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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