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잡으려고 차도로 내려와 손을 흔들고 있는 나에게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기사가 창문을 슬그머니 내리고 머리를 내밀며 묻는다."去那里(어디까지 가세요)?"
이것은 중국말로 '헤이처(黑車)'라고 불리는 불법 영업 차량이다. 처음에 이 일을 겪었을 때는 헤이처 기사가 무슨 납치 차량이라도 되는 양 재빨리 자리를 떠버렸다.그러나 헤이처 존재를 알아버린 지금은 오히려 택시보다 더 자주 헤이처를 이용한다. 불법 영업 차량을 혼자서 타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헤이처를 타는 이유는 택시보다 값이 싸고, 시간이 급할 때 편하기 때문이다. 또 가격을 미리 흥정하고 출발하기 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요금이 올라가는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헤이처는 역 주변이나 상점 앞은 물론 아파트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아예 헤이처 기사 집단이 있다. 그들은 서로 순서를 정해 차례로 손님을 태우고, 거리에 따라 요금도 일정하게 정해 놓는다.차안에는 아예 전문 객차인 듯 '환영합니다' '안전제일' 따위 글도 써서 붙여 놓는다. 이 집단에 들지 못한 헤이처 차량 기사들은 이곳에서 밀려나 다른 곳에서 영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중국이 시장경제로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헤이처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베이징은 어디서나 쉽게 헤이처를 볼 수 있다. 베이징에는 헤이처 수가 이미 택시 수의 3분의 1을 초과했다고 한다.그러나 헤이처가 마냥 좋고 편리한 것 만은 아니다. 우선 엄연히 불법이니만큼 특히 택시기사들 불만이 매우 크다. 정부는 엄격히 헤이처 영업을 단속한다고 하지만 불법 영업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만큼 단속하기 힘들다고 한다.그리고 헤이처는 보험 혜택이 없고, 안전을 보장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처음에 기사와 흥정했던 가격과 도착했을 때 가격이 다를 수도 있고, 사고가 발생할 염려가 매우 큰 것도 사실이다.
헤이처 출현은 중국의 자본주의화와 궤를 같이하는 모습으로 여겨진다. 단속이 심할수록 헤이처는 더 은밀하게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이 현재 중국 헤이처 현상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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