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죽을 맛입니다. 유가 상승으로 원자재가는 오르는데, 원단가격은 떨어지고 있으니….” 칭다오 남서쪽 자오난(膠南)경제기술개발구에서 만난 대홍(大弘)화섬의 이재환(李在桓) 총경리는 “섬유산업은 이제 남는 게 없는 장사”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1995년 당시로서는 최신 설비인 워트제트룸을 가져와 ‘연사물’(실을 꼬아 짠 고부가 섬유)과 ‘사이징물’(풀을 발라 짠 부드러운 섬유)을 생산하고 있다. 이 총경리는 “그동안 효율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중국의 기술 추격과 저가 공세에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우선 중국기업들의 기술수준이 한국업체에 근접했다. 이 회사 이상목 부장은 “사이징물에서 중국 업체들은 이미 한국기술을 거의 따라왔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은 또 과거 한국의 중고기계를 수입하던 데서 벗어나 독일 등의 최신 직기를 수입하고, 한국과 일본의 퇴직 기술자를 스카우트해 단기간에 기술을 따라붙었다는 것이다. 중국 업체의 설비투자는 한국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중국의 단위공장당 직기수는 2000~3000대로 한국공장(400~500대)의 5~6배에 달한다. 원단가공 후 다림질하는 기계인 텐타의 경우도 한국업체는 기껏 4~5대인 데 비해 중국업체는 18~20대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중국기업들은 한국업체보다 30~40% 싼 물건을 내놓고 있다.
이화섬유의 신종근 총경리는 “중국의 저가 공세 못지않게 위협적인 것은 ‘이미테이션’(소위 ‘짝퉁’ 상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회사의 경우 현지 업체의 이미테이션을 막기 위해 상표등록을 하고, 그것을 원단에 새겨넣기도 했지만 중국업체는 그것마저 모방하고 있다”면서 “상표권 침해에 대해 법원에 제소도 해봤지만, 중국 법원의 자국업체 보호 때문에 시간만 끌 뿐 결론이 안 난다”고 한탄했다. 중국업체의 ‘짝퉁’ 제품은 한국제품을 밀어내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대홍화섬 이 총경리는 전했다. “가령 한국업체가 고온고압의 가공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연사제품을 만들어 내면 중국업체는 얼마 후 정규 스펙(spec•상세규정)보다 실의 개수가 모자라는 모방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품질은 한국산이 훨씬 나아도, 값싼 ‘짝퉁제품’이 10배의 물량을 쏟아내면 시장 전체가 ‘짝퉁세상’이 되고, 한국산을 찾는 바이어는 거의 없게 된다.” 중국의 ‘저임금’ 신화 역시 허구에 불과하다고 칭다오 한인상공회의 조일환(曺逸煥) 회장은 지적한다. 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칭다오 시정부는 2003년 이후 2년 사이에 최저임금을 시내지역은 410위안에서 530위안(약 7만원)으로 시외곽 현급지역은 380위안에서 470위안으로 올렸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임금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중국에 투자한 외국기업은 이 같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의료보험ㆍ실업보험ㆍ공상보험ㆍ생육보험ㆍ양로보험 등 5대 보험금을 납부해야 한다. 또 현지 직원에게 연장근무를 시킬 경우 봉급의 150% 이상 지급해야 한다. 이 밖에도 현지 정부는 중국기업보다 한국기업에 훨씬 엄격한 환경기준을 적용하고, 공업위생과 여직원 보호 규정 등을 따진다. 조 회장은 “결과적으로 한국기업은 현지 기업보다 높은 인건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며 “낮은 인건비 보고 중국에 들어오는 시절은 끝났다”고 말했다.한국의 섬유기업들이 중국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칭다오를 ‘임가공기지’로만 보고, 내수시장을 뚫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업체들은 칭다오에서 이른바 ‘생지’(염색 전 반제품 상태의 원단)를 만들어 한국으로 ‘바이백’(되사기)할 줄만 알았지 중국 시장 개척에는 소홀했다.한국 섬유업체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비용이 적게 들고 기후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산둥성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전략(戰略) 부재(不在)를 드러낸 것이라고 칭다오에 진출한 한국 섬유업계 사람들은 자성한다. 중국 최대 섬유도매시장은 산둥성이 아니라 상하이(上海) 인근의 사오싱(紹興) 커차오(柯橋)란 곳에 형성돼 있다. 현지 섬유공장들도 이 주변에 몰리고 있다. 도매시장에서 멀리 떨어진 칭다오의 한국기업들은 중국 소비자들의 요구를 읽고 대응하는 데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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